본문 바로가기

이무기가 쓴 칼럼

[경향의 눈10] 조지 플로이드가 소환한 것들(200611)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지 플로이드는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4000만명이 넘는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식당 겸 나이트클럽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다 실직했다. 운명의 날인 지난 5월25일, 그는 위조지폐로 담배를 사려 했다. 흉기를 지니지도 않았다. 경찰을 위협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은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그의 목덜미를 무릎으로 8분46초간 눌러 살해했다. “숨을 못 쉬겠다”고 10여차례나 애원했건만 허사였다. 키 193㎝·몸무게 100㎏이 넘는 거구였기 때문일까. 흑인이어서일까. 아니면 과거 무장강도 전과 때문일까. 이 어느 것도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누구든 20달러 위조지폐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는 없다. 관행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 더보기
[여적] 라파예트 광장(200610) 미국 백악관 북쪽에는 좁은 도로와 접한 공원이 있다. 라파예트 광장(Lafayette Square)이다. 프랑스 후작으로 의용군을 이끌고 미 독립전쟁에 참전한 드 라파예트의 이름을 땄다. 공원 네 모퉁이에는 라파예트를 비롯해 독립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운 외국인 영웅 4명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세기 중반 미국 조경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드루 잭슨 다우닝이 공원으로 개발했다. 그 전까지는 경마장, 묘지, 동물원, 노예시장, 군대 야영지 등으로 쓰였다. 백악관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라파예트 광장은 ‘시위 1번지’로 유명하다. 백악관 앞 시위는 그 상징성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시위객들이 몰려든다. 과거 유신정권과 광주민주화항쟁 때 한국의 재.. 더보기
[여적] 에릭 가너와 조지 플로이드(200530) “숨을 못 쉬겠어(I can’t breathe).” 2014년 7월17일 오후 미국 뉴욕시 스테이튼아일랜드. 거대한 체구의 흑인이 백인 경찰관의 목조르기에 쓰러진다. 그는 약 30초간 이 말을 11번이나 숨가쁘게 내뱉은 뒤 의식을 잃는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약 7분 동안 경찰은 그를 방치한다. 43세 에릭 가너는 그렇게 숨졌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권력 행사에 경종을 울린 ‘에릭 가너’ 사건이다. “숨을 못 쉬겠어”는 이를 계기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운동의 구호가 됐다. 사건 후 6년 만에 판박이 사건이 재발해 미국이 들끓고 있다. 희생자는 건장한 체격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46)다. 그는 지난 25일 저녁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약 8분간 목을 조여.. 더보기
[여적] 부고로 채운 1면(200525)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21일자 경향신문 1면 제목이다. 그러나 기사는 없다. 그 자리에는 뒤집어진 안전모 그래픽과 무수한 이름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름 뒤에는 ‘떨어짐, 끼임, 깔림·뒤집힘, 부딪힘, 물체에 맞음’ 같은 간단한 설명이 붙어 있다. 산업재해 현장에서 주요 5대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이다. 2018년 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1748명이 그렇게 스러졌다. 이날 지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국가이지만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한 한국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코로나19 사태는 신문 편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사망자가 잇따르면서 부고면이 평소보다 크게 늘어났다. 이탈리아에서 ‘죽음의 도시’로 불린 북부 베르가모의 지역.. 더보기
[여적] 폼페이오의 갑질(200520)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요하는 ‘갑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다. 2군사령관 재직 시 부인의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그는 불명예 전역했다. 재판을 통해 직권남용 혐의는 벗었지만 다른 비위가 드러났다. 뇌물 수수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부정청탁은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로 인해 박 전 사령관은 군인으로서 씻기 어려운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총선에서 여론에 밀린 제1야당이 그의 영입을 포기해 정계 진출도 좌절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폼페이오 부부가 보좌관에게 애완견 산책, 세탁물 찾아오기, 식당 예약 등 개인 심부름을 시켰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국무부 감찰관을 해임했는데, 그 이유 .. 더보기
[여적] 소신의 파우치 박사(200516)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코로나19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주제는 ‘안전하게 직장과 학교로 돌아가기’였다. ‘경제 정상화 재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현안이다. 자가 격리 탓에 화상으로 참석한 한 증인이 말했다. “각 주나 도시들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 없이 서둘러 문을 연다면 발병 사례가 급증할 것이다.” 트럼프의 경제 정상화 재개는 시기상조라고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 소신 발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멤버인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80)이다. 파우치는 앞서 트럼프가 부활절(4월12일)을 경제 정상화 시점으로 고려할 때 포기시킨 적이 있다. 데이터로 트럼프를 설득한 덕분이었다. 반면 트럼프의 늑장 대응을 비판했다.. 더보기
[여적] 보팔 사고(200511)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정체불명의 흰 가스가 도시를 덮쳤다. 눈이 타들어가고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도시를 벗어나려는 안간힘도 소용이 없었다. 거리에는 이내 독가스에 중독돼 토하고 쓰러진 사람들의 시신이 넘쳤다. 단 몇 시간 동안의 가스 누출로 최소 3700명에서 최대 2만명이 숨졌다. 50여만명은 극심한 고통과 후유증을 겪었다. 1984년 12월3일 새벽 인도 중부 보팔에 있는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카바이드의 살충제 공장에서 일어난 가스 누출 사고다. 세계 최악의 산업 재해로 불리는 ‘보팔 참사’의 정확한 사상자 수와 참사 원인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보팔 참사는 안전 불감증이 부른 대표적인 인재였다. 미국 공장보다 못한 안전기준, 제대로 안 이뤄진 시설 유지 및 보수, 미흡한 경보체계의 합작품이었다. .. 더보기
[경향의 눈9] 이라크 침공 빼닮은 미국의 코로나19 중국 때리기(200507)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공세를 보면서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떠올렸다. 전개 상황이 너무나 닮았다. 이라크 침공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의 주범 알카에다와 그 배후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리려 언론과 손잡고 만든 합작품이다. 부시 행정부는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후세인과 대량살상무기 관련 가짜뉴스를 언론에 흘렸다. 주류 언론조차 애국심 열기 속에서 특종경쟁에 사로잡혀 사실 확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서특필될 때마다 최고 당국자가 이를 확인해주면서 전쟁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대표적인 기자가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였다. 그는 이라크 망명인사 아흐메드 찰라비와 당국자들이 흘린 정보를 기사화해 부시 행정부 선전전의 선봉장이 됐다. 코로나19.. 더보기
[여적] '약장수' 트럼프(200427) "살균제를 몸 안에 주사하거나, 폐에 들어가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이다. 표백제 같은 살균제가 표면이나 공기 중 코로나바이러스19를 죽였다는 국토안보부 국장의 연구 결과 발표 후 나왔다. 살균제가 코로나19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담당 국장은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는 “어쩌면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이른바 트럼프의 ‘살균제 치료법’ 소동은 다음날 그가 농담이라고 했음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를 “돌팔이 약장수’(a quack medicine salesman)”라고 .. 더보기
[여적] 슬픈 동물원(200418) 1870년 마지막 날 오후. 프랑스 유명 작가 에드몽 공쿠르는 파리 시내 한 푸줏간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어린 코끼리의 몸통과 심장, 낙타의 콩팥 등이 고기로 팔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공쿠르는 코끼리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파리 시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파리동물원의 ‘폴릭스(Pollux)’였다. 독·불전쟁이 한창이던 파리는 3개월째 봉쇄 상태였다. 식량과 연료 등 생필품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고양이와 쥐가 주식이 된 지 오래였다. 공쿠르는 “모두가 뭘 먹을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며 한 치 앞도 모르는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전했다. 도살된 코끼리 폴릭스 스토리는 전쟁이 낳은 슬픈 동물원의 한 장면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또 다른 동물의 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동물원 동.. 더보기